인권 신장은 투쟁의 산물이다. 끊임없는 투쟁으로 모든 계급, 여성, 노예 흑인 등 점진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했고 대부분 분야에서 공정한 기회가 주어졌거나 점차 주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사회적 인식이나 틀이 존재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권리를 위한 투쟁과 개인의 불편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가지고 일부 커뮤니티에서 공감을 얻고 그것을 부조리라 생각한다. 여기선 차별에 기반된 불편함도 존재하겠지만 차이에 기반한 문제도 존재한다.
예를들어 소방, 경찰 공무원이나 간호, 임용에 대한 성비 불균형이다. 직업마다 특성이 다르고 요구되는 조건이 다르니 나온 결과물이지 결코 불평등으로 볼 수 없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여성가족부와 같은 무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체력 기준을 바뀌어 여성 소방관을 늘리라는 정책이 대표적인 예시다. 경찰청도 2023년 순경 채용부터 남녀 구분 없이 체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시행하는 방안을 내놓았을 만큼 소방, 경찰직 공무원의 경우 체력을 요하는 직업이다.
일각에서는 여성 소방공무원을 늘려서 내근직이나 행정직에 배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남자 소방공무원들이 더 많은 야근, 당직, 야외근무를 배정 받게 함과 동시에 소방공무원 본질을 잊게 만드는 처사다. 소방공무원의 본질은 언제 어디서든 사건 사고 발생 시 출동하여 화재진압이나 구조 등이지 행정직이 본질은 아니다.
또 커뮤니티 특성상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일방향적인 주장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이기심이 존재하고 절대적인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리한 부분만 말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불리한 부분은 인지 자체를 못하거나 언급을 피할 수 있다. 그래야 공감을 더 얻을 수 있고 자신이 겪은 부조리함이 틀리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인권 신장 운동의 본질을 잊게 만들고 타인에게 혐오감을 생기게 해 추후 공감을 얻기 힘들게 만든다. 예를 들면 "여자라서 당했다."라는 생각이다. 물론 여성이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이 생각을 패시브로 지니게 되면 모든 문제를 여성이기 때문에 받은 차별이라는 결론만 가지고 과정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질을 흐리고 공감을 받기 힘들게 한다. 본인이 잘못해서 당한 처사를 차별로 인식하기 때문에 대화가 진행되지 않고 피해의식에 빠지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미투운동"이다. 초기에는 부당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용기 내어 권력에 맞선 행동이었지만 어느 순간 본질은 흐려지고 무기로 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배우 이진욱이 대표적 사례다. 초지일관 당당함을 보였고 무고를 알렸다. 가장 최근 결과로 무고죄로 기소된 여성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들어 무분별한 미투 운동 열풍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 이들은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파장과 상처는 평생 가는 경우가 많다. 직장을 잃고 가정을 잃는 경우는 당연하고 심한 경우 자살까지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잘못된 미투 운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물론 재판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공정하지 못하고 모든 혐의를 풀어줄 순 없겠지만 미투운동 대상자에게 남는 상처는 너무나 크다. 그리고 이런 무분별한 미투 운동은 본질마저 잃게 한다. 처음에는 지지를 얻었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공감을 얻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늘 배우 오달수 주연의 영화 "이웃사촌"이 개봉한다. 그의 성폭력의혹이 내사종결로 마무리되면서 개봉 일정이 약 2년 미뤄진 것이다. 그가 혐의를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기한 만료로 내사종결 됐다는 것은 뚜렷한 증거가 없거나 누군가 외압으로 수사를 막았다는 것인데 후자는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무죄가 되면서 개봉을 하게 되었다. 그간 고생했을 감독과 배우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전에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말한다면 기존 인권 신장 운동은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점차 공감을 얻지 못해 스스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경향신문은 영화를 홍보하는 기사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라. 당신들이 만들고 키운 사태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여성 인권이니 뭐니 백날 떠드는 것이 과연 여성을 위한 것인가 본인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함인가? 인권신장이란 명목 하에 무분별한 편들기는 악마를 키워낼 뿐이다. 본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정의인지 정의의 가면을 쓴 차별 조장인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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