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을 바라보는 감정과 이성의 미스매칭
오늘은 아동 성폭력 범죄자인 조두순의 출소날이다. 지난 12년이라는 세월도 무심하게 흘러갔고 그에게 자유를 되찾게 해 주었다. 비록 경찰 감시와 전자발찌라는 부분적 제한은 있지만 공분을 없애기엔 역부족이다. 한 아이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사람이 받은 고작 12년이라는 세월은 피해자에게 그 어떠한 위로, 위안도 주지 못한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더 큰 대의를 지키고자 함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감성에 젖은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두순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깊게 생각해보고 하나씩 고쳐나가자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형량이다. 조두순은 판결 당시 주취감형으로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법이 개정됐지만 아직도 심신 미약과 같은 정신이상에 대해선 낮은 형량이 부과되고 있다. 성범죄 관련 형량도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다.
이는 사법부와 연관되어 있다. 국민정서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적절치 못하지만 너무 동떨어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 사는 곳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인데 그 역학을 다하지 못하면 그 존재 의미가 무색해진다.
사법부의 문제는 입법부와도 맞닿아 있다. 사법부에서 아무리 높은 형량을 주려고 해도 그에 따른 법이 미비하면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릴 수 없다.
국회의원이란 하나라도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법을 만들고 혹여나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은 무소불위의 권한이나 특혜를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 민생을 위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인식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조두순은 정해진 형량을 다 채웠다. 그를 비판하고 꺼려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출소날을 기다려 폭력을 가하거나 협박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그릴 위해서가 아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서다. 낙인효과가 만연한 사회는 새로운 가해자,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모든 사회에서 전과자를 배척하면 범죄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럽다. 참 많은 고민과 고뇌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억지로 써내려간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감성과 이성의 미스매칭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런 일에 감정을 낭비하고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한 개인에겐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아마 펜을 잡을 것이다. 오늘 밤도 술로 지새울 예정이다.